이탈리아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 (Andrea Bocelli)라는 테너 가수가 있습니다.
보첼리는 12세 때 축구를 하다 시력을 잃었지만, 불행한 여건속에서 낙심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그 모든 불행한 환경을 다 극복하고 성공했습니다.
보첼리는 한때 변호사로 활동하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어서 변호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성악 레슨을 받아 결국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너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특별히 보첼리는 주기도문을 비롯하여, Amazing Grace 등, classical 한 찬양곡을 많이 불렀습니다.
지난 9월 뉴욕 Central Park에서 안드레아 보첼리 (Andrea Bocelli)의 야외 Concert가 있었는데, 
그날 비가 왔지만 그의 열성팬들은Concert 장소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특별히 Central Park Concert에서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함께  캐나다 소프라도 
셀린 디온 (Celine Dion) 이 함께  듀엣으로 “The Prayer(기도)”를 너무나 멋있게 잘 불렀습니다.
소프라노 셀린디온 (Celine Dion)은 영화 Titanic 의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을 불러 명성을 얻었습니다. 
셀린 디온은 “하나님께 노래하는 천상의 목소리가 있다면 보첼리처럼 들릴 것이다”고 크게 칭찬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비롯하여,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보첼리의 목소리를 천상의 소리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보첼리의 열열한 fan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불행한 여건속에서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일어서서 자기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바로보면 참으로 위대하게 보여집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오른팔로 불리던 영국의 교육장관도 했고 내무장관도 지낸
데이비드 블렁킷(David Blunkett)  장관도 앞을 볼수 없는 시각장애인입니다.  
블렁컷은 평소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자기는 “밤에 전기가 없어도 책을 읽을 수 있고, 원고 없이도 청중들을 바라보며 연설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것은 자기에게만 있는 큰 장점이라면서 낙천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약간의 불편일 뿐, 결코 장애는 아니다"면서, 매우 긍정적인 태도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불행한 환경속에서도 행복한 인생으로 변화시킨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반대로 행복한 여건 속에서 오히려 불행한 삶을 산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역사상 가장 복되고, 가장 좋은 환경인, 에덴동산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좋고 아름다운 환경속에 살았지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범죄하여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의 행복은 항상 주위의 환경과 비례하지는 아니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가인과 아벨, 형제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상황이 나옵니다. 
예배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행위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배드리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참으로 은혜와 축복이 넘치는 시간이 바로 예배의 시간입니다. 
이렇게 은혜가 충만한 예배를 드리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불행한 결과가 생겨납니다.
에배를 드리다가 동생을 미워하고, 나중에는 죽이고 마는 엄청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은혜의 시간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참한 결과로 끝이 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우리가 복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를 불행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원인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본문을 통하여 몇가지 생각 해 보겠습니다.
1. 우리의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를 제거해야, 불행을 극복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에덴의 동쪽에서 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형이 동생을 죽인 너무나 끔찍한 살인 사건입니다. 
이들 형제는 각각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형제가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가인의 제사는 열납되지 아니했고, 하나님으로부터 reject 당했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가인이 어떤 태도로 응답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미래가 결정이 됩니다.
역사상 참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이렇게 실패하고, 거절되어지는 순간에, 더욱 자기 자신을 살펴보고, 겸손하게, 믿음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이러한 자세로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께서는 그를 더욱 높이 세워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하였고, 다윗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한 여건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더욱 교만하여지고, 심령이 강팍하여 져서, 
사람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은 더욱 비참한 인생을 살수 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 보면은,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합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기에 하나님께서 accept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제사의 형식은 있었지만, 진정으로 믿음으로 드리지 아니했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받으시지 아니했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배의 중심은 믿음에 있습니다.
여기서 흔히 말하는 가인 콤플렉스가 나옵니다. 
“A complex characterized by rivalry, competition, and extreme envy or jealousy of a brother, leading to hatred.”
“극단적인 경쟁의식과 라이벌 의식속에서,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가인이 심히 분해했다고 합니다. “Cain became very angry and felt rejected.”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가인이 매우 분노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지금 가인이 왜 이렇게 화를 내고 있나요?
자기가 잘못했는데, 동생에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나쁜 심성입니다. 
오늘날도 보면 문제는 나에게 있는데, 주위 사람들이 문제라고 우기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인의 컴플렉스의 현상입니다.
그런데 좀더 본문을 좀더 깊히 묵상 해 보면 가인의 문제는 자기의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아니함보다, 더욱 큰 문제는 아벨의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어진 사실에 대한, 시기와 질투의 문제입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의 불행의 출발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시기와 질투의 문제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자꾸 비교할때 우리의 불행은 가속도가 붙습니다. 
지난 8일 영국의 BBC인터넷 아시아 판에서 이러한 기사가 났습니다.
“Tackling South Korea's high suicide rates.”
한국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잘 살게 되었는데, 매일 4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세계 12번째로 잘 사는 경제 대국인 한국에서 자살률이 치솟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서울대학교 홍강의 서울대 교수(소아정신과)의 말을 인용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돈과 성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다 보니,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하면 실패했다고 느끼게 되고, 부모 역시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는 식으로 행동한다"고 지적했습니다. “the parents behave as if 'you're not my child”
"From the beginning of childhood, the importance of money and achievement are emphasised by their parents, so they feel that unless you are successful in school grades and a good job, good prestigious college, you're not successful, and the parents behave as if 'you're not my child',"
Dr Hong said.
남보다 좋은 대학, 남보다 더욱 좋은 직장, 남보다 더욱 높은 사회적인 좋은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면 실패 했다,  “you're not successful” 이라는 비교의식 때문에 자살율이 자꾸 높아진다고 합니다. 
사법고시 합격해도 그 사람의 능력과 실력보단느 어느 대학 출신인가를 더욱 따집니다.
얼마전 한국 신문을 보니 한국의 한나라당 대표, H국회의원이, 대학때에 미팅을 했는데 상대방이 E여대 학생이었는데,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자기가 졸업한 고등학교 이름을 대자 마자 그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자기도 상당히 좋은 대학을 다니는데, 고등학교를 가지고 따지는 사회적 풍조를 한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의사나 변호사 중에서도 그사람의 능력과 실력보다도,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가?를 더욱 중요시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러한 풍조는 그 사회와 그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미국의 ivy 대학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같은 대학의 교수들을 보세요, 출신 대학이 얼마나 다양한지 모릅니다.
미국의 저 시골 대학에서 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미, 매우 다양한 출신들이 교수로 있습니다.
저들은 가능한 동일한 대학 출신들을 교수로 뽑지 아니합니다. 
학문의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 대학에서 같은 학교 출신이 교수로 있으면, 학문의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어느 학교 출신인가?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의 분애에서 얼마나 능력이 있으며, 얼마나 학문적인 성취도를 이루었는지가 먼저입니다.
살아나가면서 이러한 외적인 화려한 조건을 갖추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로 진학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에 대하여 얼마나 열심을 다하고 있으며, 맡은 일에 얼마나 충성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에서 살아야합니다. 
만약 우리가 항상 남을 의식하고 시기와 질투와 경쟁관계 속에 살아나간다면, 
결국은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일에 가인이 동생을 찾아가서, 
"나의 제사는 하나님이 안 받으 셨는데, 너는 어떻게 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셨냐? 방법을 좀 가르쳐 주라."  그러면 아벨이 "형님,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이렇게 서로 협력해서 제사를 드렸더라면, 가인의 제사도 하나님께서 받았을 것이고, 
두 사람 모두 행복하게 살았을 것임에 틀림이 업습니다. 
복된 삶의 방법이 이렇게 간단하데 그러나 부패한 인간은 생명의 길을 선택하지 아니합니다.
가인은 아벨이 죽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을 죽여서 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은 참으로 이것은 무서운 생각입니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모두 죽여 없애야 된다고 생각하고, 600만명을 죽였지만 결국은 비참하게 끝이 났습니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는 지성인 200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당시 캄보디아 인구는 약 100만명이었는데 1/5을 죽였습니다. 폴 포트는 “화이트 칼라”가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정권을 유지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존재는 “지성인이”라 고 생각하면서 나라 전체의  똑똑한 사람들은 모조리 죽였습니다.
처형을 할때에 손이 깨끗한 사람, 손에 펜을 잡은 흔적이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죽였습니다.
20세기 러시아와 중국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을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나요?
레닌, 스탈린, 모택동, 폴포트, 김일성 등이 공산주의 이론을 내세워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죽인 사람들은  약 1억명으로 잡고 있습니다.      
공산 혁명을 위하여 1억명을 죽였지만 결국은 실패했습니다.      
사람들을 죽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나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없애버리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제거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참으로 악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가인의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방법을 보세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많은 억울함과, 모순과, 아주 부조리한 사건입니다. 
이렇게 부조리하고 모순된 일을 앞에 놓고 성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위탁합니다. 
그리고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하시면서, 
성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리고 조용히, 그 모순 투성이인 고난의 십자가를 집니다. 
여기에 생명이 있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기에 진정한 Beauty가 존재합니다. 
더 이상 누구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누구를 비판하거나, 저주하지도 아닙니다. 
마음에 원한이 맺히지도 아니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도 하지 아니합니다. 
오히려 대제사장, 로마 군인들, 본디오 빌라도, 그리고 가롯 유다까지 다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중에서 알곡과 가리지의 비유가 있습니다.
농부가 주인에게 가라지를 당장 뽑아버리자고 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추수때까지 그대로 두어라고 하십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다친다고 합니다.
추수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진정으로 성숙한 성도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과 나와, 1대 1의 관계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낙심하거나 실족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당신의 합당한 시간에 가장 아름답게 이루어 주실 줄 분명히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를 모두 제거하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할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된 인생으로 만들어 주실줄 믿습니다.
2. 불행을 피하고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십니다. 6절,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이때 가인이 “하나님 저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제 마음속에 분노가 가득차 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나님께 솔직하게 고백했다면 OK.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난 후에, 하나님이 또다시 가인을 부르십니다.
9절,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제가 죽였습니다."  
“하나님 용서 해 주십시오” 했으면 희망이 있었을 터인데, 
가인은 오히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I don't know. Is it my job to take care of my brother?"
가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때, 그것을 무시해 버리고, 응답하지 아니할때에 
가인은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에스겔서로 우리 모두 QT 하는데,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지 아니하면 엄청난 불행한 일이 생길것이라고, 그토록 많은 메세지를 전했지만,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할때에 엄청난 심판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실패하고, 아무리 큰 절망적인 상황속에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귀에 들려오고, 우리가 그 말씀에 신실하게 응답한다면, 우리의 인생에 소망이 있습니다. 미래가 있습니다.
다윗의 경우를 보면, 엄청난 죄악과 허물이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하고, 자기의 죄악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하면서. 자기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더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 51:17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The sacrifice God wants is a broken spirit. 
       God, you will not reject a heart that is broken and sorry for sin.” 
하나님께서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갈때에 더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매일 매일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정직하고, 신실하게 바로 응답하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key가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에 바른 응답하면서 사는 것이 곧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가 있어야 우리의 인생에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영국의 런던에 웨스트민스터 채플이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유명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이교회에서 목회 하셨고, 그 앞에는 캠벨 몰겐 George Campbell Morgan
목사님이 목회를 했습니다. 두 분 모두 참으로 휼륭한 목회자 이었습니다. 
켐벨 몰겐 목사님의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매일 오후 저녁 무렵 사랑하는 딸의 손을 잡고 런던의 Hyde Park 공원을 산책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해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날 갑자기 딸이 아버지하고 공원 산책을 며칠간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묻지를 말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매우 서운했습니다. 
그 이유를 몰겐 목사님은 나중에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아버지 몰겐 목사님께 드릴 성탄 선물로 드릴, 샌들을 만드느라고 시간이 필요 했습니다.
성탄절 날 아침 딸로 부터 이 선물을 받으면서, 몰겐 목사님은 사랑하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너무 고맙다. 참 고맙다. 이것을 만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니? 
그런데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 아버지는 이 선물보다도, 내가 나와  함께, 매일 오후에 산책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단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도 이와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뭘 한다고 열심을 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더욱 좋아하십니다.
 A.W. Tozer라는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열심 있는 그리스인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과오는, 하나님의 일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하는 일이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말씀과 기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어려움과 시험 속에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구체적으로 순종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불행에서 복된 삶으로 변할 줄 믿습니다.
지난 9월 15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카니스탄 전쟁 영웅, 23살, 다코타 마이어 미해병 병장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US Marine Sergeant Dakota Meyer)
마이어 병장은 지난 2009년 아프칸에 파병되어 어느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탈레반군의 습격으로 부대가 큰 위험에 빠졌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지휘관은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후퇴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마이어는 죽은 동료들의 시신을 적진에 두고 후퇴할 수 없다 하면서, 
자기 동료 한명과 함께 차를 몰고 적진으로 돌진했습니다. 
다섯 차례나 적진을 오가며, 4명의 동료장병 시신을 찾아내었고, 
적진에 갇힌 동료 13명을 구해냈고, 그리고 아프칸 민간인 23명을 구했습니다.  
총 36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백악관은 이 마이어 병장에게 최고의 훈장인, 무공훈장을 수여하기로 했습니다. 
“he would be awarded the Medal of Honor, the military’s highest honor, 
 그래서 백악관 비서실에서 다코타 마이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께서 마이어씨와 통화하고자 합니다.” 대통령으로부터 온 전화입니다.
그때 다코타 마이어는 “이제 막 입사한 회사인데, 일과시간에는 일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라고 거절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마이어와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 오바마 대통령은 훈장 수여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I do appreciate, Dakota, you taking my call,  yesterday ,”
“마이어, 어제 내 전화를 받아줘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했습니다.  
그래서 백악관에서 웃음이 터졌다고 합니다. 참으로 멋있는 이야기 입니다.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전화해도regular business hours, 자기가 근무시간에는 개인 전화를 받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일에만 전념한다는 정신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전화를 business 시간에는 받지 아니하는 평범한 시민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오바마 대통령도 귀한 대통령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나 마이어 병장 다 근사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곧 미국의 정신입니다.
미국의 최고의 지도자인 대통령이나, 일반 평범한 미국 국민 모두, 헌법을 잘 지키고, 
사회의 법을 지키는 것을 중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너무나 귀한 생각입니다.
법을 잘 지키는 국민이 일등 국민입니다.
여러분, 누가 훌륭한 크리스챤인가요? 하나님 나라의 법을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을 위함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만들어 졌습니다. 
여러분, 복된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3. 불행을 극복하고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절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십니다.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가 마치 짐승이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자기를 삼키기 위히여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죄가 자기를 막 물려고 하는 자세입니다. 
가인은 자기 마음에 있는 죄를 다스려야 할 이 절박한 시간에, 가인은 쓸데없는 생각을 합니다. 
내 불행의 원인이 동생 아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아벨 떄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의 감정은 자꾸만 아벨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찼고, 
아벨만 죽이면 모든 것이 다 해결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인의 감정을 절제하라고 합니다.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But you did the wrong thing, and now sin is waiting to attack you like a lion. 
Sin wants to destroy you, but don't let it.”
여러분, 
일반적으로 우리가 화가 날때에, 우리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실패합니다.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은 화가 날때에, 절제합니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면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감정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정은 우리를 속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속에 누군가 미운 생각이 가득차면, 오히려 그 반대로 그 사람을 사랑하면 됩니다.
미움의 감정이 크면 클 수록, 억지로라도 더 많이 사랑하면 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가득차면, 
그것은 “마치 죄가 짐승처럼 웅크리고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이제 막 물려고 하는 자세”입니다. 
얼마나 위험한 시간입니까? 
이 순간 참으로 염려해야 할 것은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여러분, 불행을 극복하고,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의 욕심과 헛된 욕망을 절제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자기의 감정을 잘 절제하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승리합니다.

지난 11월 1일 미연방의회 하원에서 “하나님을 우리는 신뢰한다” (In God We Trust)를 미국의 
모토임을 재확인 했습니다.  “In God We Trust’: House reaffirms national motto — again.”
미국 연방하원에서 396대 9로, 절대다수로 이 모토를 재확인 했고,
그리고 공공건물 및 공립학교에서도 In God We Trust라는 문구을 게시하도록 장려했습니다. 
이 문구는 미국의 건국초기에 프랜시스 스코트 키(Francis Scott Key)의 미국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의 마지막 부분에 “And this be our motto: “In God is our trust;” 처음 삽입한 후에, 나중에 남북전쟁 당시 연방 주화에 처음 새겨졌고 모든 현행 화폐에 나타나 있습니다. 
“The motto first appeared on U.S. coins during the Civil War and now is inscribed on all coins and dollar bills.”
그런데 현대에 와서 많은 법원에서는 이 모토가 “의례적인 이신론(ceremonial Deism)”이지,
 “기독교 신앙에 대한 공적인 지지가 아니라는 주장”을 해 왔습니다.
“The motto has withstood legal challenges from groups that said it violated the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Courts have held that the motto is “ceremonial Deism,”not an official endorsement of religion.”
그러나 이번 하원에서는 미국의 모토, 미국의 좌우명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임을 재 확인 했습니다.
사실 이 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의회에서 super majority 인, 3분의2이상의 지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발의안은 396대9라는 절대다수 표결로 통과됐습니다다. 
반대의원들은 게리 애커먼, 제롤드 내들러 2명 (뉴욕), 
동양계인 주디추, 마이크 혼다와 피트 스타크 3명 (가주), 
이매누얼 클리버(미주리), 헨리 존슨 2명 (미주리), 
로버트 스캇 1명(버지니아) 의원 등의 8명의 민주당 의원들이었고, 
공화당은 저스틴 어매쉬 의원(미시건) 1명이었다.  
8명의 민주당 의원, 1명의 공화당 의원이 반대했고 나머지396은 찬성 했습니다.
미국의 지도자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In God we trust” 를 모토로 삼고, 
나라를 치리한다면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야 할 이땅, 미국을 위하여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지켜주시고,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복을 주시기를 기도해야합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모든 불행과 모든 실패를 극복하고, 행복하고,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1) 우리의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의 마음을 제거해야합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하게 여기고 날마다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야합니다.
3) 나아가서 하나님을 위하여 절제하는 믿음있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나갈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그리고 우리의 가정을 복되게 해 주실줄 믿습니다.